소시오토프

 

​용어

소시오토프sociotope라는 용어는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및 도시 계획과 건축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각 분야에 따라 다소 의미는 다르지만 인간의 사회적 모임이라는 뜻의 라틴어 ‘socius’와 자리, 위치, 위상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topos’를 조합한 용어로, 생태조경 용어로서의 ‘비오톱biotope’이나 문학비평 용어인 ‘크로노토프chronotope의 개념이 병렬로 제시되기도 한다. 문학비평에서 소시오토프는 2009년 국제발자크연구그룹(GIRB)의 "발자크와 사회적 인간Balzac et l'homme social"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사용되었으며, 이 주제와 관련해서 이 개념은 3 가지 방식으로 재정의 될 수 있다. 그것은 (1)'사회적 표시의 모든 현상' (2) "행위자들[등장인물]을 규범화시키고 따라서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 사회적인 것에 의해 강력하게 투자된 장소들" (3) "고도로 코드화된 다양한 사회 장면들"에 관한 것이다. 조제-루이스 디아즈 따르면, 이 세미나의 주제는 "활동중인 발자크 사회학 sociologie balzacienne  en acte"(José-Luis Diaz, "Introduction“ du no 323, Revue des sciences humaines, 2016, p. 9-10. Diaz, 2016, p.7, Diaz가 강조한)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이와 같은 소시오토프 개념은 "행동의 사회적 표시marquage social의 다양한 층위와 측면을 구별하는 데” (Diaz, 2016, p.9) 유용할 것이다. 실제로 발자크는 자신의 우주를 만들고 이 세분화된 세계에서 사회-공간적으로 순환하는 인물들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그리고, 분명히 biotope의 개념에서 영감을 얻은 sociotope의 개념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시오토프란 “한 집단이 그들의 문화, 윤리적 규범, 삶의 규칙을 드러내는 특정한 시기에 관찰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지만, 그 범위가 역동적이고 가변적이지만 연속적인 차원에서 정해진 사회적 공간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분석

발자크의 소시오토프 탐험

 

발자크의 소설은 텍스트 속에서 사회 전체를 말하겠다는 괄목할 만한 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90권이 넘는 작품과 약 2500여 등장인물들과 함께 ‘소우주 microcosme’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농축물인 이 소우주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유사한 세계로, 역사가들과 사회학자들은 사실주의적인 묘사에서 연구 소재를 얻는 데 널리 사용하고 있다. 역사가들의 경우는 작가의 견해와는 달리 작품 속에서 분명하고 솔직하게 전개되는 화자의 정치적인 변화 과정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심성사와 사회학 역시 자신들의 분석에 쓰일 생활 방식, 사회 집단 간의 관계에서 주로 소재를 구한다. 반면 사회와 밀접하게 관련된 공간 문제는 이보다는 훨씬 덜 고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학연구가들이 지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지리학자들도 소설에 의해 전달된 지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공간 문제는 사회, 과학, 역사, 문화의 산물로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대한 표현과 인식의 변화는 문학 안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텍스트란 따로 존재하는 특수한 공간(혹은 장소)이 아니라 전체와의 관계에서 사회적 상상력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구체화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시오토프를 탐험한다”는 것은 텍스트의 공간적인 차원에서의 미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과정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문화, 역사와 그 표상 간의 관계들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들과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복합화되는 공간을 텍스트라고 보는 사회비평적인 접근방식으로  『인간희극』을 구성하는 핵심 작품 중의 하나인 『고리오 영감 Le Père Goriot』(1836년)을 분석해 보자.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진 발자크는 소설 속의 사회를 묘사할 ‘토폴로지 topologie’에서 볼 수 있듯이 소시오토프적인 표상은 다양하고 복잡하다.하면서 사회-역사적인 ‘지시대상’에 엄격하게 부합하기를 바랐고, 이는 공간과 장소를 기재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발자크가 묘사한 파리 ‘지형 topographie’이 외연적으로 정확하고, 이야기 전반에 걸쳐 능숙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포 connotation의 측면에 위치할 ‘토폴로지 topologie’에서 볼 수 있듯이 소시오토프적인 표상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작품 속의 장소들은 『고리오 영감』이 진행되는 날짜인 “1819년”(왕정복고 시대) 파리의 지도에 분명하게 표시돼 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등장인물들의 주소를 찾아볼 수 있다.

(1)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 거리(la rue Neuve-Sainte-Geneviève)에는 『고리오 영감』이 시작하는 보케르 하숙집이 있다. 이 집에 하숙집 주인 보케르 부인과 그의 두 하인인 실비와 크리스토프가 살고 있으며, 하숙인들로는 쿠튀르 부인과 빅토린느 타이페르, 미쇼노 양, 보트랭, 푸아레, 고리오 그리고 라스티냐크가 있다. 보케르 집은 당시 의대생인 비앙숑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식당으로도 제공된다.

(2) 쇼세 당탱 (La Chaussée d'Antin)은 신흥 귀족을 포함한 새로운 부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곳 생 라자르 거리에 은행가인 드 뉘싱겐 남작의 집이 있으며, 나폴레옹 제국의 귀족인 드 레스토 백작의 저택은 엘데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고리오가 델핀느와의 관계를 위해 마련하는 외젠느의 아파트가 있는 다르투아 거리가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3) 포부르 생 제르맹(Le faubourg Saint-Germain)은 옛 정통 귀족의 저택들이 위치하는 구역이다. 이곳의 그르넬 거리에 드 보세앙 저택이 있다(다른 드 보세앙 가문은 생 도미니크 거리에 거주한다).

이외에 또 다른 주소들로는 고리오가 보케르 하숙집에 ‘물러앉기’ 전에 살았던 알 오 블레 근처의 쥐시엔느 거리가 있으며, 미쇼노 양이 보트랭을 쫓는 경찰관과 약속을 잡는 시테 섬에 있는 생 탄느라는 좁은 길이 생 샤펠 근처에 위치한다. 팔레 루아얄과 도박장, 오페라극장, 이탈리아 극장, 뷔퐁극장 등의 사교계를 위한 여가 장소들이 거론되었다. 숲 또는 샹젤리제는 부자들이 주로 하는 마차 산책지로, 튈르리의 정원은 이들이 마차에서 잠시 내려 산책하는 장소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식물원, 뤽상부르 정원은 주로 학생들이 즐겨 걷는 산책지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파리에서 『고리오 영감』의 내용은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고리오 Goriot’ 이야기가 첫 번째 이야기이다. 대혁명기에 부를 축적한 고리오의 인생에 있어 마지막 몇 달 간의 이야기로, 고리오는 두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과 돈을 내어 준다. 큰 딸 아나스타지는 드 레스토 백작과 결혼해서 백작부인이 되어 있으며, 둘째 딸 델핀느는 드 뉘싱겐 남작 부인이 되어 있다. 고리오가 두 딸의 행복만을 바라며 했던 무분별한 뒷바라지가 결국 딸들의 불행의 원인이 되고 만다. 고리오는 ‘부성의 그리스도 Christ de la Paternité’(Le Père Goriot, p. 231)답게 수난의 마지막 순간을 살며, 그가 모든 것을 희생했던 딸들로부터 버림받은 채 고독 속에 사랑과 절망으로 죽고 만다. 이 이야기는 ‘보케르 하숙집’에 함께 기숙하고 있는 청년 ‘외젠느 드 라스티냐크 Eugène de Rastignac’의 ‘질겁한 épouvanté’ 눈 밑에서 펼쳐지고 있다. 법대생인 외젠느가 입신출세의 길로 들어서는 이야기가 두번째이다. 『인간 희극』의 후속 작품들은 여기서 배운 교훈들이 훌륭하게 되새겨지고 적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외젠느 드 라스티냐크는 대단한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장관이 되며 마침내 프랑스 귀족원 의원까지 된다. 서로 끌어가려고 한 리옹(lion)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드 마르세와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유명한 “13인조”의 일원이 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불사신 Trompe-la-Mort’으로 알려진 자크 콜랭의 체포에 관한 것이다. 그는 같은 하숙집에서 ‘보트랭Vautrin’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자이며, 카를로 에레라 신부라는 이름으로 발자크의 후속작품 『잃어버린 환상 Illusions perdues』(1837~1843년)과 『창부의 영광과 비참 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1838~1847년)에서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서사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골자는 등장인물들의 상호작용을 묘사하고 있다.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사회생활에서 양심이나 도덕성 대신 돈과 권력의 힘을 주장하고, 라스티냐크는 미덕을 지켜 보트랭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거부하지만, 파리의 세련된 사교계의 사회가 그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트랭이 설파한 교훈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고리오의 죽음은 성공하려면, 도덕적이고 평범하게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그런데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서두에서 <파리의 사생활 장면>의 이 이야기에 대해 당대의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답한다.

 

“이 이야기가 파리 밖에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