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개념의 출현

         

사회비평이 현존하고 발전해야 되는 이유는 사회비평이 자신의 비평개념들의 창안과 적용을 통해서 미래를 전망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사회비평의 변화발전에 있어 1980 후반기는 프랑스의 지적 상황의 변화는 탐지될 있고 무시할 없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 “구조주의는 발달근거의 효력들이 사그러든 것처럼 보인다. 획득된 지식과 경험은 효력을 대체했고, 강력하게 제도화된 것이다. 글쓰기 행위에서처럼 독서의 관계에서, 알려지고 위치 지워진 무의식의 연구작업은 매우 풍부한 연구성과를 내놓았고, 예상치 못했던 발견들을 이끌어냈다.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식의 혹은 마르크스풍의 분석은 만일 분석이 (프랑스에서 보다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참고문헌으로 여전히 남아있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의 제약과 선험적인 출처들의 짐을 내려놓았다.바로 80년대부터, 사회비평은 새로운 개념이 되는 가지 비평 도구를 통해서 문학연구의 특수성을 정의하려고 시도 했으며, 때부터 사회텍스트sociotexte, 동반 텍스트co-texte, 소시오그램sociogramme이라는 세 가지 비평개념들을 사용하게 된다.

실제로 사회비평의 입장에서 보면 구조주의에서 빌어 개념들은 작품들의 모든 잠재성을 파헤치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으므로, 사회 미학의 사행과정의 보다 역동적인 사고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을 것이다. 뒤셰는 텍스트 이론에서 유래된 텍스트에 “텍스트Texte”라고 대문자 T자를 쓰면서 인용부호를 붙이고는 사회텍스트라는 개념을 제기하기에 이르고, 동반텍스트라는 용어를 공들여 만들고, 소시오그램 창안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비평의 비평개념의 총체는 견고해졌는지 궁금하다. 파트리스 파비가 그의 연극사전』의 “사회비평 대해서 “사회사실의 텍스트의 등록에 주의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주변학파의 결과들을 도입하면서 손위누이 격인 기호학이 그랬듯이 사회비평은 모든 특수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경계하기는 호되지만 온당할 수 있다. 유산이건 차용이건 간에 조심성은 필요불가결하며, 사회비평이 경계해야 위험중의 하나는 기술 절충주의 혹은 비평적인 전문어의 위험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비평의 초기부터 그리고 현재까지 여전히 사회비평이 시학자들로부터 차용해서 개념들 때문에 사회비평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모른 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드리워진 그림자는 자체로 잘못이 아니라 이런 저런 현존을 알려주며, 이러한 현존들은 조심하게 수도 있고 길을 잃고 헤매게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무런 탈없이 다른 용도로 발전된 용어를 도입하고 차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우리가 사회비평을 연구적용하는 데 있어, 사회비평도구들을 이미 발전되어 선험된 개념전체로 취급해서도, 그리고 그렇게 수도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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